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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A DIGITAL ODYSSEY

심연의 방정식

EQUATIONS OF THE ABYSS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계산에 의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검색 결과와 추천 영상, SNS 화면, 인공지능의 판단, 도시의 교통과 금융 시스템까지, 우리의 일상 뒤에는 수많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보이지 않는 계산 구조를 하나의 우주처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 코드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공간과 감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탐구했습니다.

전시 제목에 담긴 ‘오디세이’는 길고 험난한 항해를 의미합니다. 관객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하나의 우주선을 타고 미지의 공간으로 출발하는 여행자가 됩니다.

전시의 흐름은 성운과 빛에서 시작합니다. 이후 수학적 질서, 카오스와 중력장,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 마지막에는 특이점과 새로운 우주의 가능성에 도달합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안정된 질서가 보입니다. 빛이 모이고, 선이 반복되며, 입자들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공간을 구성합니다. 그러나 전시가 진행될수록 그 질서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궤도는 뒤틀리고, 공간은 휘어지며, 중심이라고 믿었던 지점조차 계속 이동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주의 외형을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이번 작품에는 Lambert W 함수, Lorenz Attractor, Bessel Function, Kerr Metric과 같은 수학적·물리학적 개념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름은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공식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개념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움직임입니다.

Lambert W 함수는 어떤 값이 자기 자신과 지수함수 안에 동시에 들어 있을 때, 그 관계를 거꾸로 찾아가는 함수입니다. 특히 한 가지 입력에서 결과가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분기 구조를, 하나의 세계가 두 개의 가능성으로 갈라지는 장면으로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경로, 보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우주를 표현한 것입니다.

Lorenz Attractor는 단순한 규칙이 어떻게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줍니다. 출발점이 아주 조금만 달라져도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다른 궤적이 됩니다. 흔히 ‘카오스’라 부르지만, 이는 아무런 규칙이 없는 혼란이 아닙니다. 규칙은 분명히 존재하되, 장기적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개념을 통해 인간의 삶과 창작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남, 선택, 실패 하나하나가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방향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Bessel Function은 원형의 파동이나 진동을 설명할 때 나타나는 함수입니다. 물에 돌을 던졌을 때 생기는 동심원이나 서로 만난 파동의 간섭처럼, 중심에서 출발한 힘이 공간 전체로 퍼져나가는 구조를 만듭니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원과 밝고 어두운 층은 장식이 아니라, 파동이 만나고 사라지는 관계에서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Kerr Metric은 회전하는 블랙홀 주변의 시공간을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의 공식입니다. 회전하는 거대한 질량은 주변의 시공간까지 함께 끌고 갑니다. 이를 프레임 드래깅이라 부릅니다. 작품 속에서 빛과 입자가 중심을 향하면서도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고 비틀린 궤도를 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 작품들은 과학적 현상을 그대로 계산하는 시뮬레이터가 아닙니다. 실제 이론을 출발점으로 삼되, 전시 환경과 실시간 표현에 맞게 수치적으로 단순화하고 시각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과학이 작품의 근거라면, 예술은 그 개념을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 번역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 관객은 화면을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관객의 터치와 움직임, 경우에 따라서는 소리가 작품 속 입자와 시공간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가까이 다가가거나 손을 움직이는 순간, 궤도가 달라지고 공간의 밀도와 흐름도 함께 변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완성된 한 장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매 순간 계산되고 다시 생성되는 사건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여러분이 경험한 장면과 다음 관객이 경험할 장면도 다릅니다. 관객은 우주를 외부에서 구경하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 우주의 변화를 촉발하는 능동적인 존재가 됩니다.

이번 전시에는 실시간 그래픽과 GPU 연산, 수십만 개의 입자, 웹 기술과 인공지능이 활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을 많이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작품의 목적은 아닙니다.

저에게 기술은 표현의 유행이 아니라 사고의 재료입니다. 물감이 색과 질감을 만든다면, 코드는 시간과 행동을 만듭니다. 회화가 한순간을 화면에 고정한다면, 코드는 조건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역시 작품을 대신 만드는 작가라기보다, 대화하고 실험하며 가능성을 넓혀가는 도구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 기술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작품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입니다.

저는 학생 여러분이 새로운 도구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무조건 따라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정답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세계를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관객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수학은 설명을 위한 언어일 뿐인가.

코드는 도구인가, 아니면 재료인가.

그리고 인공지능과 함께 만드는 시대에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전시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시 후반부에서 관객은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 특이점에 점점 가까워집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입니다. 저는 이 경계를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우리가 알던 감각과 사고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으로 보았습니다.

특이점은 모든 것이 끝나는 장소처럼 보이지만, 이 전시에서는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질서가 붕괴한 자리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또 다른 질서가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전시는 우주에 관한 전시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전시입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 앞에서도 계속 관찰하고, 질문하고, 상상합니다.

여러분도 작품을 보면서 무엇을 표현했는지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몸과 감각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어떤 작품 앞에서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어떤 작품 앞에서는 조금 멀리 물러서 보십시오. 빠르게 지나가는 빛보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어둠을 오래 바라보셔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움직임과 시선이 작품 안에서 어떤 변화를 만드는지 직접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연의 방정식》에서 말하는 심연은 단순한 어둠이 아닙니다. 아직 계산되지 않은 가능성,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입니다.

오늘 이 전시가 여러분에게 완성된 하나의 답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울산대학교 디지털콘텐츠디자인학
김건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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